아마구리甘栗
아마구리甘栗
  • 괴산타임즈
  • 승인 2019.10.03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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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신의 詩로 쓰는 컬쳐에세이
이승신 시인이 동경 메구로 강 6키로에 늘어진 밤 사쿠라 배경으로  -  2016  3  28  동경
이승신 시인이 동경 메구로 강 6키로에 늘어진 밤 사쿠라 배경으로 - 2016 3 28 동경

'아마구리'~ 우리 말로 하면 '감율甘栗 달콤한 밤'이라고 해야겠다.

반짝반짝하고 동글동글한 게 어려서 갖고 놀던 공기돌 같이 예쁘고 사랑스럽다.

동경에도 길가다 보면 있었지만, 교토에는 기온祇園 번화가 수많은 가게들 사이에 밤 볶는 냄새가 나 발길을 멈추게 된다. 아마구리는 말그대로 달콤한 냄새가 난다. 밤 종류가 단 것인지 슈가를 넣는 것인지는 아직 물어보지 않았다.

싸주는 봉투에 '명대 아마구리의 노포 히야시만쇼도 名代甘栗の老舗 林万昌堂' 라 써있는 걸 보면 대대로 이어온 이름있는 아마구리 집일 것이다. 물어보니 역사가 150년 가깝다 하고 맛도 좋지만 내 나름 아름다운 추억으로 발길을 멈추는 것이다.

따끈해야 맛이 더 나기에 작은 양의 6백엔 짜리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그때부터 커다란 철솥에 달달 볶아 저울에 150g 정확히 재고는 일본 어느 상점에서나 그러듯 익숙한 손짓으로 두겹이고 세겹이고 예쁘게 정성스레 싸주려 한다.

그 질 좋은 포장지 버리는게 아깝고 기다리는 시간이 아깝고 봉투를 열어 반짝이는 그 밤을 어서 만져보려고 포장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지만, 나를 알아보면서도 정성껏 포장하려 하여 매번 손들어 스톱을 시킨다.

내가 알기론 이것은 원래 헤이조구리平讓栗 였다.

요즘은 잘 안보이지만 40년 전 아버지와 동경에서 긴자를 걷다보면 밤 볶는 포장마차가 보였다. 아버지는 이게 평양밤平讓栗이라고 기뻐하시며 함께 걸으면서 까먹었다. 한국에서 삶거나 구운 밤은 껍질을 애써 벗겨야 하는데 이 밤은 톡 치면 전체가 쉽게 까지는게 신기했다. 평양산이어서인지 헤이조구리平讓栗 평양밤이라고 했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 평양서 단신으로 오신 아버지는 처음엔 평양 어머니가 서울로 다니러 오셨고 갓 신혼의 내 부모님과 함께 '李允模' 아버지 문패가 걸린 집 앞에서 세 분이 사진도 찍었었다. 그 사진이 이젠 내게 없지만 내가 닮았다는 할머니의 그 흑백 모습이 늘 가슴에 있다.

그 후 38 선이 어머니와 아들 사이 그어졌고, 그리고는 할머니가 다시는 못 내려오셨을 것이다. 아버지가 1983년 가실 때까지 30년, 어머니가 그립다던가 고향이 가고 싶다던가 하는 이야길 직접 들은 적은 없으나, 이제 생각하면 평양밤을 길에서 사시고 평양냉면을 찾던 그 자체가 그리던 속마음의 깊이가 아니었을까, 살아계실 때 그런 마음의 한 조각을 알아드렸더라면 그런 효가 없었을 건데~ 하는 아쉬움과 철없음이 새삼 뼈저리다.

이거 평양서 온 거 맞느냐? 동경의 평양밤 마차 상인에게 물으시던 화안한 그 모습이 떠올라 나는 교토京都 기온祇園 거리 아마구리 집을 지날 제마다 그 밤 봉투를 사 든다. 머리와 가슴에만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기억이 물체화한 것이라고나 할까.

아버지가 묻던 말, 이거 평양서 온 거 맞느냐? 를 물으니 이젠 중국에서 온다고 했다.

시끄런 세상에도 가을은 오고 있다. 군밤 계절이 오고 있는 것이다.

길가다 군밤 냄새가 나면, 뉴욕 주립대학 New York State University가 있던 뉴욕주 저 북쪽 끝 오스위고Oswego, 아들이 태어난 바다같은 오대호五大湖 앞, 이년을 살았던 미국집 벽난로 모닥불에 구워 먹던 기억도 떠오른다.

밤栗은 추운 겨울 최고의 간식거리다.

5대 영양소가 다 들어있는 풍부한 영양으로 성장과 노화방지에도 그만이라고 한다.

거기에 저마다의 아름다운 사랑의 기억이 들어있다면 인생은 조금은 더 아름답게 승화될 것이다.

 

아버지의 그리움이 한으로 스며있던 헤이조구리平讓栗, 동경 긴자 네거리에서

아마구리甘
달콤한 밤 아마구리甘栗 노포  -  기온 하야시만소도林万昌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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