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집힌 세상, 뒤집힌 언어
뒤집힌 세상, 뒤집힌 언어
  • 괴산타임즈
  • 승인 2019.10.01 16: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석준 흙살림 동일한의원 원장
박석준 흙살림 동일한의원 원장.
박석준 흙살림 동일한의원 원장.

공자는 권력을 쥐면 제일 먼저 정명正名을 하겠다고 했다. ‘정명’이란, 이름[名]과 그 이름이 가리키는 실질[實]을 같게 만든다는 말이다.

꽃을 꽃이라고 부르고 돌을 돌이라고 부른다는 말이다. 다소 평범하게 들리는 말이지만 이 말에는 여러 가지 뜻이 들어 있다.

공자 스스로는 정명을 하는 이유에 대해, 이름이 바르지 못하면 무엇보다도 사람들 사이의 의사소통이 순조롭지 못하고 의사소통이 순조롭지 못하면 일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일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면 사회의 질서를 세울 수 없고 그러면 형벌이 알맞지 않게 되고 그러면 백성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다면 그 사람을 임금이라고 할 수 없다. 임금이 아닌 사람을 임금이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공자는 이런 것들을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이름을 바로 잡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는, 임금이 아닌 사람을 그 사람에게 맞는 이름으로 부르고 거기에 맞는 대우를 하는 것이다.

둘째는 그 사람을 임금답게 만드는 것이다. 셋째는, 이도 저도 안 되면 그 사람에게 적절한 형벌을 가하는 것이다. 이런 원칙은 임금만이 아니라 부모, 자식, 친구는 물론 사물에도 마찬가지로 적용할 수 있다.

자기 백성이 줄줄이 죽어나가는데도 눈 하나 깜짝이지 않는 사람이 임금을 자처하기도 하고 제 자식을 죽이기도 하는 사람이 부모로 불리기도 한다. 이것만이 아니다. 주변의 사물들도 제 이름을 갖지 못하고 엉뚱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원래의 이름이 전혀 다른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런 예는 우리 주위에 너무도 흔하다. 우리 옷은 어느 새인가 ‘옷’이 아니라 ‘한복’으로 불리고 있다. 집도 마찬가지다. 우리 집은 ‘집’이 아니라 ‘한옥’이라고 한다. 그러면 몸은 어떨까?

몸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몸은 더 이상 과거의 우리가 알고 있던 몸이 아니다. 한 예로 심장을 들어보자.

심장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은 가슴에 있는 실질 기관으로서의 심장을 떠올릴 것이다. 네 개의 심실과 심방으로 이루어진, 피의 순환을 담당하는 기관이다.

그러나 원래 심장은 그냥 ‘심心’이라고도 하는데(‘장臟’ 또는 ‘장藏’은 무언가가 거기에 저장되어 있어서 가득 차 있다는 뜻이지 ‘기관器官’organ이라는 뜻이 아니다), 이는 ‘마음 심’이다. 과거에는 심장을 어떻게 보았기에 이를 ‘마음’이라고 하였을까?

과거에도 심장은 오장육부의 하나로, 염통이라고도 하는 것처럼 하나의 장기臟器로 보았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기관과 장기의 구분이다. ‘기관’은 특정한 기능을 하는 특정한 구조물을 말한다(구조-기능). 이에 비해 장기는 특정한 작용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런 기능에 상응하는 구조물은 아니다. 그것은 그냥 하나의 덩어리일 뿐이다. 기의 덩어리일 뿐이다.

이런 구분에 더하여 과거에는 심장을, 마치 나라를 다스리는 군주와 같이 온 몸을 주재하는 것으로 보았고 특히 심장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사고가 일어나는 곳으로 보았다.

이를 흔히 사고의 ‘심주설心主說’이라고 하는데, 이에 비해 모든 사고가 뇌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보는 입장을 ‘뇌주설腦主說’이라고 한다. 그러나 과거 우리, 더 정확하게는 전근대 동아시아의 대부분 지역과 사람들은, 사고는 심장에서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지금도 이런 관점에서의 용법이 남아 있다. 예를 들면 ‘소심小心’하다(심장의 기를 줄인다, 마음을 졸인다)든가 ‘한심寒心’하다(심장의 기가 차다)든가 하는 용례가 그것이다. 이런 용례는 모두 과거의 전통적인 사고방식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이는 다른 장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앞에서 심주설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정확하게 말하자면 몸주설이라고 해야 한다.

왜냐하면 사고는 근본적으로 심장에서 이루어지지만 다른 장기도 사고에 관여하기 때문이다. 그런 예의 하나가 ‘대담大膽’하다(쓸개의 기가 세다)는 표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는 간이나 심장이나 폐와 같은 이름으로 과거의 장기가 아닌 기관을 가리키고 있다. 우리가 써왔던 오장육부라는 장기의 개념 대신 근대 과학적인 기관이라는 개념이 그 자리에 들어섰다. ‘명’은 그대로인데 ‘실’이 바뀐 것이다.

요즈음 사람들은 과거의 이름은 알지만 그 이름으로 가리키던 ‘실’은 잊었다. 원래의 ‘실’ 대신 전혀 새로운 개념의 ‘실’만 알 뿐이다. 그래서 원래의 이름을 쓰는 한의학의 ‘실’을 모른다. 간에 열이 있다든지 심장에 화火가 있다든지 하는 말은 헛소리로 들릴 뿐이다. 소통이 되지 않는다.

어차피 이름은 사람이 만드는 것이다. ‘실’도 시대에 따라 바뀐다. 명실이 모두 바뀐다. 그러나 명과 실의 괴리가 크면 클수록 소통은 더 어려워진다. 그럼으로써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민중이다.

오늘날 정명이 필요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기 위해 과거의 명과 실이 무엇이었는지, 또한 지금의 명과 실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 한 마디로 동서와 고금의 문제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임무가 되는 까닭이다.


  • 충청북도 괴산군 관동로 193 괴산타임즈
  • 대표전화 : 043-834-7008 / 010-9559-6993
  • 팩스 : 043-834-7009
  • 기사제보/광고문의 : ssh6993@hanmail.net
  • 청소년보호책임자 : 노원래
  • 법인명 : 괴산타임즈
  • 제호 : 괴산타임즈
  • 등록번호 : 충북 아 00148
  • 등록일 : 2014-12-29
  • 발행일 : 2014-12-29
  • 발행인 : 노원래
  • 편집인 : 노원래
  • 괴산타임즈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괴산타임즈. All rights reserved. mail to ssh6993@hanmail.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