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덕혜옹주의 남편 소 다케유키의 고단한 사랑
[기획연재] 덕혜옹주의 남편 소 다케유키의 고단한 사랑
  • 괴산타임즈
  • 승인 2019.09.05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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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는 본시 우리 땅이다' 작가, 이석우 시인의 우리 역사문화 답사기
눈물의 섬 대마도를 가다 ⑫.
이석우 시인
이석우 시인

덕혜옹주의 남편 소 다케유키(종무지)는 대마도 37대 도주이다. 그는 영어학자이자 시인이며 화가였으며 정부로부터 백작의 작위를 받은 신분이었다.

종무지는 도쿄의 구로다 저택에서 막내아들로 태어난다. 아버지는 8살 때 그리고 어머니도 고등학교 다닐 때 잃게 되어 부모의 따뜻한 손길을 어린 나이에 놓아야만 하였다.

세상에 혼자 남았으나 다행히 1928년 도쿄대 영문과 문학부에 진학할 여력은 있었다. 더군다나 대학 2학년 때인 1930년에는 덕혜옹주와 첫선까지 보게 되는 행운까지 얻게 된다.

덕혜옹주도 역시 8살에 아버지인 고종을 잃는 슬픔을 겪는다. 아버지를 어린 나이에 잃은 동병상련의 아픔 때문일까? 두 사람의 결혼으로 가는 길목에 장애가 되는 갈등은 크게 일어나지 않았다.

다음 해 종무지는 도쿄대를 졸업하고 덕혜는 가쿠슈인 본과를 졸업하자, 5월 8일 종무지의 도쿄 저택에서 혼례식이 거행되었다.

한국에서는 난리가 났다. 정략결혼에 분개하는 국민들 귀에는 덕혜의 남편이 꼽추이며 추남이라는 소문이 전염병처럼 돌고 돌았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순탄하게 이어가는 듯하였다. 결혼 2주년이 지난 1932년 11월 딸 마사에(正惠)를 얻었는데 남편은 생후 3개월 된 딸의 얼굴을 유화로 그리는 가족애의 일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덕혜옹주는 딸 정혜의 출산 후유증으로 우울증을 앓는가 싶더니 정신분열증이 덧나게 된 것이다.

덕혜는 모친인 귀인 양씨가 사망한 후 이듬해 봄 무렵부터 신경쇠약 증세를 보이기 시작하여 영친왕의 보호 아래 요양하였으나 조발성치매증라는 진단을 받게 된 터였다.

그 뒤 종무지와 결혼하여 증상이 호전되는가 싶더니 점점 증세가 나빠지고 있는 참이었다.

덕혜옹주 남편의 입장으로 보면 마른하늘에서 천둥과 벼락이 떨어진 셈이었다. 정신병자인 아내를 수발하며 어린 딸을 양육해야 하는 때문이었다.

한국에서는 남편이 아내를 감금하고 학대한다는 소문이 꼬리를 물었다. 그러나 종무지는 이구의 생일 축하연, 이은 부부의 은혼식과 같은 대한제국 황실의 행사에 딸 정혜를 데리고 참석하였다.

1946년 재산세법에 의해 종무지는 대부분의 재산이 정리되고 귀족에서 일반인으로 주저앉고 말았다. 간병이 힘들어지자 아내를 도립 마츠자와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는 결정을 내린다.

그는 딸 정혜가 1955년 결혼하자 영친왕 부부와 협의하여 이혼하고 곧 재혼한다.

정확한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다음 해 딸 정혜는 자살하겠다는 유서를 남기고 사라진다. 종무지는 작은 항아리에 진주 한 알을 넣고 장례를 치르지만, 죽을 때까지 딸의 사망신고를 내지 않았다.

항아리 속의 진주는 딸 정혜의 영혼인 셈이다. 1976년에 발표된 그의 시는 참으로 애잔하다. “하늘로 날아가 버린 걸까 하얀 비둘기처럼/ (일부러 버렸을까 젊은 날의 갈피를) //납골당의 작은 항아리에/면으로 휘감겨 있는 작은 진주여!” -종무지의 시 「진주」 일부.

종무지는 1985년 죽을 때까지 자신의 25년 결혼생활과 딸의 자살에 대하여 침묵한다. 그는 말년에 유년시절, 가족문제, 인생에 대한 소해를 수필집에 담았다.

여기서 그는 덕혜옹주와의 결혼 생활에 대하여“그 25년은 내 인생의 공백기이다”라고 단 한 줄을 남겼을 뿐이다.

그렇다면 종무지는 덕혜옹주를 사랑했을까? 이 물음에 대한 답을 그의 시에서 헤아려 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미쳤다 해도 성스러운 신의 딸이므로 / 그 안쓰러움은 말로 형언할 수 없다./혼을 잃어버린 사람의 병구완으로/ 잠시 잠깐에 불과한 내 삶도 이제 끝나가려 한다.// <중략> 하룻밤도 침실로 들이지 않고/꽃잎 같은 입술도 훔치지 않지만/아내라고 부를 것을, 내게 허락해다오./나이 먹지 않고 언제나 어린 아름다운 눈썹의 소녀여.//어떤 때는 당신이 가리키는 입술을/저녁노을 구름 사이로 보이는 붉은 색의 요염함에 견주었다.//네 눈동자가 깜빡거릴 때의 아름다움은/칠월칠석날 밤에 빛나는 별 같았다. <중략> 남모르는 죄를 진 사람이/정해진 대로 길을 가는 것처럼./언젠가 너를 만나고 싶다고/정처 없이 나는 방황하고 있다.//봄이 아직 일러 옅은 햇볕이/없어지지 않고 있는 동안만 겨우 따뜻한 때./깊은 밤 도회지의 큰길에 서면/서리가 찢어지듯 외친다. 아내여, 들리지 않니.” 종무지의 시 <사미시라>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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