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절대 나쁜 것은 없다
몸에 절대 나쁜 것은 없다
  • 괴산타임즈
  • 승인 2019.09.04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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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준 흙살림 동일한의원 원장
박석준 흙살림 동일한의원 원장.
박석준 흙살림 동일한의원 원장.

나는 근대화를 위한 유신 독재가 막바지에 달한 70년대 말에 대학(경제학과)에 들어가서 술과 담배를 배웠다.

부모님께서는 술 담배를 끊으라고 성화셨지만 당시 한의대 본과생이던 형은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너는 속에 화火가 많으니 담배를 피워 맞불을 질러야 한다고 말씀해주셨다. 나는 그저 주어들은 지식으로 이열치열以熱治熱하는 이치인가보다 하고, 나를 이해해주는 형이 고마웠다.

형이 한 말을 이해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먼저 돌아가신 형님의 뒤를 이어 다시 한의대에 들어가 한의학을 배우고 한의사가 되고 나서도 그 뜻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러다가 2011년부터 시작된, 나로서는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당하고 나서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제대로 먹을 수도 잘 수도 없었던 시간들. 그때 술과 담배가 없었다면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낼 수 있었을까. 물론 지나친 술과 담배로 몸은 이미 망가져 있었고 그에 따른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한의학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상대성에 대해 알고 있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적어도 그런 측면이 있다는 것을 누구나 인정한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삶에서는 의외로 그러지 못한 경우를 많이 본다.

음양에 대해 흔히 오해하고 있는 것은 음양은 상대적인 두 사물을 가리킨다고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물과 불을 각각 음양이라고 보는 것처럼 음이 따로 있고 양이 따로 있다고 보는 것이다. 물론 물은 그 자체로 음의 성질을 갖고 있고 불은 양의 성질을 갖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음양을 말할 때는 항상 기의 관점에서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하면 어떤 것이 음인지 양인지는 다른 사물과의 관계 속에서 드러나는 것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사람(특히 생식을 위한 사람)이라는 한 사물의 관점에서 볼 때, 여자와의 관계에서 남자는 양이 되지만 이는 생식이라는 관점에서 말한 것이다.

남자 중에도 소극적이고 정적인 남자는,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다른 남자와 관계를 맺어 남성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는 소극적인 남자는 음, 적극적인 남자는 양이 된다.

같은 남자라고 해도 몸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몸의 겉은 양이고 속은 음이다. 높은 것은 양이고 낮은 것은 음이지만 높다든가 낮다든가 하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다.

서울에서 보면 남산이 높지만 에베레스트에 비하면(서로 관계를 가지면) 낮으므로 이때는 남산이 음이 된다. 이렇게 음양이 변하는 것은 관계와 관점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을 잊어버리면 음양론은, 마치 똑같은 것을 갖고 어떤 때는 음이라고 했다 어떤 때는 양이라고 하는 것처럼 보여,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이야기가 되어 버린다.

관계에 따라 성질이 바뀌는 예는 인간관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아주 활발하여 소위 다혈질인 사람이 어떤 사람 앞에서는 꼼짝도 하지 못하고 조용해지는 경우가 있다.

반대로 음적인 사람이 어떤 사람과 같이 있으면 매우 양적으로 바뀌는 경우도 있다.

조용하던 사람이 술을 마시면 활발해지는 것처럼 이러한 변화와 이행은 사람 사이에서만이 아니라 사회적 또는 자연적 환경의 변화에 따라서도 일어난다.

강남의 귤이 강북으로 가면 탱자가 된다(남귤북지南橘北枳)는 말은 이러한 예를 잘 보여주고 있다.

춘추시대 말기 제齊 나라에 안영(晏嬰. ? - 기원전 500년)이라는 재상이 있었다. 키는 작았지만 검소할 뿐만 아니라 큰 지혜와 용기를 갖고 있는 명재상으로 평가된다.

어느 날 안영이 초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되었다. 초나라의 영왕靈王은 그를 욕보이기 위해 안영이 있는 자리에서 포승에 묶인 제나라 사람을 지나가게 하였다.

왕은 모르는 척 하고 “제나라 사람은 참으로 훔치는 일을 좋아하는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안영은 “귤은 회수 이남에서 자라면 귤이 되지만 회수 이북에서 자라면 탱자가 됩니다. 잎은 서로 비슷하지만 열매 맛이 다릅니다. 왜 그럴까요? 이는 풍토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제나라에서 자라면 도둑질을 하지 않지만 초나라에 와서는 도둑질을 하니, 초나라의 풍토가 사람들을 도둑질하게 만드는 것 아닙니까?”라고 하였다.

이 말에 영왕은 크게 웃으며 “성인과 더불어 장난치는 게 아니라더니, 내가 오히려 욕을 보았네”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여기에서 남귤북지南橘北枳라는 말이 나왔는데, 이는 환경에 따라 종種이 바뀐다는 말이 아니라 귤의 기[맛]가 바뀐다는 말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서로 연관되어 있으며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이 변화는 매개, 곧 관계를 통해서만 일어난다. 관계 속의 변화를 통해 모든 사물은 하나의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끊임없이 이행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매개를 통해, 그리고 그런 매개 속에서의 끊임없는 변화와 이행을 통해 모든 사물은 하나의 사물이 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뭐에는 뭐가 좋다, 뭐에는 뭐가 나쁘다는 말을 믿는다. 일면적으로, 그것도 일방적으로 믿는다. 아무리 나쁜 사람도 제 새끼에게는 한 없이 좋은 부모일 수 있고 아무리 좋은 사람도 누군가에게는 나쁜 원수가 될 수 있다.

음양론은 바로 이렇게 매개 속에서 변화하고 끊임없이 이행하고 있는 사물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한 인식 틀이다. 올바른 실천을 위한 출발점이다. 세상에 절대적으로 좋거나 나쁜 것은 그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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