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백제 은행나무 출생지를 잃다
[기획연재] 백제 은행나무 출생지를 잃다
  • 괴산타임즈
  • 승인 2019.07.24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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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는 본시 우리 땅이다' 작가, 이석우 시인의 우리 역사문화 답사기
눈물의 섬 대마도를 가다 ⑨.
이석우 시인
이석우 시인

대마도의 상대마정은 한국전망대가 있는데 날씨가 맑은 날이면 그리운 형제의 얼굴 같은 부산이 보인다.

해표도에서 바라보는 부산 광한루의 불야성은 수 백년전 밤마다 옹기종기 둘러앉아 어둠을 쫓던 초롱불이 진화한 것이리라. 아직도 저 불빛 속에 선향(先鄕)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 있을지. 조선말까지 여자들은 한복을 평상복으로 차례 입고 남자들은 한국어를 모두 구사하였다. 대마도는 본시 우리 땅임이 확실하다.

조선역관사 위령비를 뒤로하고 얼마간 아래로 내려오면 단풍길을 만나게 된다. 여기에 관광객들의 시선을 끄는 것이 있으니 바로 1500년 묶은 백제 은행나무이다. 높이가 무려 23m나 되고 둘레가 13m나 되니 바라볼수록 생명의 경이로움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이 사는 동안이 재앙을 겪듯이 이 은행나무도 세월이 심술처럼 던지는 돌팔매를 피해갈 수 없었다. 1798년 낙뢰로 가지가 꺾이고 나무 안이 불타버리는 수난을 겪더니 1950년에는 태풍을 맞아 기둥나무가 으스러지는 불행을 또 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 은행나무는 다시금 경이로운 생명력으로 기력과 풍체를 회복하였다. 아무래도 한국의 관광객이 자리를 쉬이 뜨지 못하는 것은 민족 원형질의 향수 때문일 것이다.

백제는 660년 나당연합군에 망해버렸다. 왕자 부여풍(扶餘豊)은 잃은 나라를 되찾고자 663년 백강 전투를 벌였으나 바닷물을 백제인들의 피로 물들이고 일본으로 돌아간다. 이때 유민의 일부는 대마도에 정착하여 성을 쌓았으니 그것이 바로 백제식 산성인 가네타이다. 이때 백제 유민들이 고향에서 제일 크게 자라고 오래 사는 은행나무를 함께 옮겨 온 것이다.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이 은행나무는 오랜 세월 동안 백제인의 망국 한을 품고 버티어 왔다.

그런데 대마시는 이즈하라 금전 산성에서 백제계 사람들이 만든 성이라는 표지판을 뽑아버리더니 이번에는 이 백제 은행나무의 표지판에서 '백제'라는 단어를 삭제해버렸다. 배에서 내려 대마도 땅에 발을 딛자마자 울려주던 ‘고향의 봄’ 노래도 이제 멈추어버렸다.

안내판을 모두 갈아치우는 물리적인 차단은 가능하겠지만 “대마도는 본시 한국 땅”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심리적 차단은 불가능한 일임을 모르는 모양이다.

4세기 후반 백제의 근초고왕은 강력한 왕권을 확립하였다. 영산강 유역에 떠돌던 마한의 세력을 복속시키고 낙동강 서쪽에 남아 있던 가야의 세력을 영향력 아래 넣는다. 가야의 해상권을 이어받은 백제는 신라와 더불어 동아시아의 해상을 장악하기에 이른다. 371년에는 군사 3만을 거느리고 평양성을 공격하여 고구려의 고국원왕을 죽이고 대방고지까지 점령하였다.

한편 신라와 우호관계를 수립하고 중국의 동진과는 원만한 외교관계를 유지하였다. 중국이 혼란해지자 요서지역에 백제군(百濟郡)을 설치하는 발빠름을 보여주기도 한다.

백제는 일본 열도에 눈을 돌린다. 이미 진출해 있던 백제계통의 도래인들과 손잡고 정권에 직간접으로 관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 왕은 “백번이나 단련한 강철로 ”칠지도(七支刀)를 만든다. 그리고 이 칼은 왜왕에게 내려준다. 그런데 일본인들은 백제왕이 신공왕후에게 바친 것이라고 억지를 부리며, 이 시기에 한반도 남부 가야 지역에 임나일본부를 설치했다는 근거 자료로 이 칼을 내세운다. 당시의 강력한 왕권을 가진 백제가 왜왕에게 머리 조아리며 칼까지 바칠 까닭이 있을 턱이 없다.

당시 일본에는 말이 없었다. 근초고왕은 아직기(阿直岐)에게 말 2필을 일본 왕에게 선사하고 말 사육과 승마술을 가르치도록 하였다. 그가 경서(經書)에 능통한 것을 알게 된 왜왕은 태자의 스승으로 삼았다. 이때부터 그는 귀인 또는 대인을 의미하는 아지길사(阿知吉師)라고 불리게 되었다.

후일 아직사(阿直史)라는 일본의 귀화씨족으로 자리 잡았으며 대마도에서는 후손들이 ‘아비루(阿比留)’라는 성씨로 남는다.

1500년 된 백제 은행나무
근초고왕 때(369년) 왜왕에게 하사한 것으로 길이는 74.9cm, 칼날의 길이는 65cm이다. 칼의 좌우로 각각 3개씩의 칼날이 가지 모양으로 되어 있어 칠지도 (七支刀 )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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