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동백꽃섬에서 대마도를 쏘다
[기획연재] 동백꽃섬에서 대마도를 쏘다
  • 괴산타임즈
  • 승인 2019.07.11 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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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는 본시 우리 땅이다' 작가, 이석우 시인의 우리 역사문화 답사기
눈물의 섬 대마도를 가다 ⑧.
이석우 시인
이석우 시인

동백섬은 대마도와 48 km의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군사 요충지였다. 이종무 장군은 견내량에 배를 집결시켰다가 거제도 남단 후원방포를 전진기지로 1419년 6월 19일 거제 주원방포를 떠나 20일 낮에 동백섬을 바람처럼 휘돌아 10척의 배가 대마도에 선착하게 되는 것이다.

대마도를 병풍처럼 가려주고 있는 동백섬의 조류에 전선을 올려 쏜살같이 대마도로 돌진한 것이다. 대마도의 왜구들이 전혀 군선으로 알아차릴 틈도 없이 대마도에 접근할 수있었던 것은 이 동백섬의 지형을 잘 활용한 까닭이었다.

1936년 일제는 주민을 강제이주 시키고 이 섬에 해군기지를 만들었다. 아직도 포대 4곳, 방공호 3곳과 포대사격 방향지시석 등이 고스란한 가운데 13여 가구의 주민이 섬의 상처를 보듬으며 살고 있다. 1971년 지세포항이 국가 어항으로 지정 되어 남해안 최고의 명소가 되면서 동백섬의 관광개발이 관심사로 떠오르자, 이용이 자유로운 순수한 민도(民島)로 전환해 달라고 국가에 꾸준하게 요구해 왔던 터였다.

동백섬은 길이 1.5km, 너비 0.5km, 해안선 둘레 3.7km이다. 장승포항에서 5km 쯤 떨어져 있어 배편으로 15분이면 섬에 발을 얹는다. 천천히 차 한 잔 마실 시간이면 아픔을 어쩌지 못해 파도에 몸을 던져버린 가랑잎 같은 동백섬과 만나게 되는 것이다.

배에서 내리면 친절하게 마중 나온 바이크와 해국과 털 머위 그리고 팔손이의 눈홀김이 찾는 이에게 가뭇한 정감을 던져준다. 쪽빛 바다로 치장한 민박과 횟집도 있어 나그네 유혹을 결코 잊지 않는다.

조선 세조 3년 1457년 “조라포 북쪽과 지세포 남쪽 산봉우리에 따로 후망(堠望)을 설치하여 본진의 군인으로 윤번 후망케하라” 라는 내용이 조선왕조실록에 처음 등장한다. 지세포봉수대 설치를 명하고 있는 것이다. 1469년『경상도속찬지리지』에서는 지사도(知士島)로 1760년 『여지도서』에서 지삼도(只森島)로 기록되어 있으며 다른 문헌에는 지삼도(知森島), 지심도(只心島)로 표기되기도 하였다. 숲이 울창하니 지삼도요 모양새가 마음심(心) 자를 닮았으니 지심도이며 선혈 낭자한 동백꽃이 반년간이나 피고지니 눈물 그렁한 사랑, 그 이름 동백섬이다.

윤후명의 단편 ‘팔색조’는 환상 속에서 영원한 사랑을 그린 이 동백섬을 무대로 한 소설이다. 이 섬은 동백꽃이 피면 섬 전체가 빨간 심장처럼 타오르는 마음의 불꽃섬이 된다. 동백은 잎새로 지지 않고 통꽃으로 떨어진다. 땅바닥에 기진하는 동백꽃은 마치 선혈 낭자한 사랑 그 것과 무엇이 다르랴. 사람들은 잊혀진 사랑을 기억해보려고 이곳을 찾지만 실은 심장마저도 빼앗기고 돌아간다. 혹여 마음을 꽃잎에 빼앗기는 일이 사랑을 찾아내는 일은 아닐까.

한백록은 25세 되던 해에 무과에 응시하였다. 그는 진잠현감으로 있을 때 농업과 잠업을 권장하며 사졸훈련에 힘쓰던 중, 지세포만호(知世浦萬戶)에 제수되었다.

지세포 곁의 옥포성이 왜군에게 함락되자 경상우수영에 속해 있던 지세포진은 수군의 군영지 기능을 제대로 하기 힘들어졌다. 마침 1592년 5월 7일 옥포대첩이 벌어졌다. 왜선은 26척이 박살났으나 이날 결투에서 조선수군은 한 사람도 상한 자가 없었다. 연이어 합포 앞바다에서 5척, 적진포에서 13척을 분살하였다. 옥포대첩의 승리 현장에 춘천출신의 한백록 장군이 있었다.

옥포대첩이 끝난 후, 지세포만호 한백록은 이순신 휘하로 들어가게 되고 이틈에 왜군이 지세포성에 들어와 지세포 망대를 새로 구축하여 임진란 내내 조선수군이 감시당하는 불행한 일이 벌어졌다.

한백록 장군은 그 해(1592) 4월부터 6월까지 옥포 · 당포 · 부산 등 해전에서 연전연승한 것을 참작하여, 전사한 정발(鄭撥) 장군의 후임으로 부산병마첨절제사에 특별 제수되었다.

1952년 8월 24일 선조실록에 의하면 한백록이 왜적의 총탄을 맞고도 계속 진격하였는데 전투가 승리로 끝났을 때 그는 행복하게 죽어있었다. 종4품 이었던 그는 당상관인 정3품 절충장군에 책록되었다.

이 곳 또한 이순신 장군이 26척의 왜선을 분쇄하고 임진 해전의 첫 승리를 거둔 곳이기도 하다. 일본의 도고 사령관이 러시아 발틱함대를 측후하여 궤멸시켜 러 · 일전쟁을 승리로 이끌게 한 곳도 바로 이 동백섬 앞바다였다. 그러나 후일 도고는 “영국 넬슨은 군신(軍神)에 비유될 수 없다. 해군 역사상 군신이라고 할 제독이 있다면 이순신 한 사람뿐이다. 이순신과 비교하면 나는 하사관도 못 된다”며 이순신 장군 앞에 머리를 조아렸다.

지심도 동백섬 터미널.
지심도 동백섬 터미널.
지심도의 절벽 안쪽에서 조선 수군이 몸을 숨겼다가 해류에 전선을 올려 쏜살같이 대마도에 도착하였다.
지심도의 절벽 안쪽에서 조선 수군이 몸을 숨겼다가 해류에 전선을 올려 쏜살같이 대마도에 도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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