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세를 살아보니
백세를 살아보니
  • 괴산타임즈
  • 승인 2019.06.13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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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신의 詩로 쓰는 컬쳐에세이
이승신 시인이 동경 메구로 강 6키로에 늘어진 밤 사쿠라 배경으로  -  2016  3  28  동경
이승신 시인이 동경 메구로 강 6키로에 늘어진 밤 사쿠라 배경으로 - 2016 3 28 동경

김형석 교수 인생의 피크는 백세, 지금인 듯 하다.

수 많은 강연을 하고,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칼럼니스트요, TV에 자주 등장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배우려 따르고 있으니.

그의 강연을 처음 들은 것이 1980년대 초이니 거의 40년 전의 일이다.

워싱톤에서 살 때인데 한인 교회로는 제일 오래된 '워싱톤 한인교회'였다. 보통은 교회에서 이름있는 다른 목회자를 모시고 부흥회를 하게 되는데, 목사가 아닌 분이 서울에서 오시어 사흘 연속 강연을 한 것이다.

그때는 연대교수로, 60년대 70년대 이미 많은 저서로 라디오 방송으로 안병욱 교수와 함께 이름을 날리던 때다. 바쁜 미국 삶이니 나는 한 번만 가려고 했다.

'삶에 무엇이 옳은가 옳지 않은가가 얼마나 중요한가, 그것이 정의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감싸는 것이야말로 그것이야말로 진짜 더 귀한 것으로 그것은 사랑이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마지막 날의 결론을 들으려 버지니아를 사흘 내리 달려 갔었고 그의 설득력있는 말은 감동을 주었다.

한동안 잊었는데 언젠가 백세가 다 되신 김형석 선생의 조선일보 전면 인터뷰에 눈이 갔다. '진정한 행복이란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받는 것, 사랑하는 사람을 위하여 고생하는 것'이라 했다. 흔히 사랑하는 사람과 편안히 살기를 원하겠는데 철학자의 답은 그랬다.

그와 함께 안병욱 선생의 고향이 평양이므로 북과 가장 가까운 양구시에서 두 분의 철학관을 몇 해 전 지어주었다. 그 입구엔 안병욱 선생의 무덤이 있다.

강연 전 식사를 하며 김형석 선생에게 40년 전 워싱톤 이야기를 하니 정확히 기억하고 계셨다.

'백세 강연'은 열정이었다. 두시간을 앉아서도 서서도 하였는데 꼿꼿한 자세는 물론 온화한 태도와 기억력, 씩 웃는 백만불짜리 미소는 여전했고 앞서 살아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삶의 지혜가 한이 없다.

바람직한 노년의 삶은 자유와 행복을 위한 스스로의 독립, '사랑이 있는 자립'이 중요하다고 했다. 책을 많이 읽는 것은 60이 되고부터 차이가 난다고도 했다.

40년 후 그의 테마인 사랑은 개인적이 되었다.

전에는 모든 걸 포괄하는 사랑이었다면, 이번엔 죽음 이야기와 함께 헤어지게 되면 정신적 고독감이 극대화 되니 이성 친구와의 교제, 이성 친구와의 동거를 적극 권장한다며 자녀와 주위에서 권유해 주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러 해 전 홀로 되신 그 분은 어떤 상황일까 생각했다. 보좌하는 아주머니가 곁에 보이긴 했다.

지난 해 강연을 180 번 하여 세무서를 찾아가 자신이 세금을 더 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하며 돈을 끌어 안으면 인격을 잃는다고 했다.

'이기적인 사람은 안썩으려 해도 그냥 없어지고 말지만, 역사가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은 때가 오면 썩을 줄 안다. 한 알의 밀알처럼 더 많은 열매를 남겨주고 가게 된다. 삶의 의미와 가치를 나누며 사는 것이 행복한 백년을 사는 법' 이라고 했다.

이야기 중 제일 인상에 남는 것은, 자신이 아는 지인 가운데 가장 성공한 사람은 평양서 중학교를 같이 다닌 '윤동주'라고 한 것이다.

그 분이 백년을 살아오며 정치 지도자나 권력가를 몰랐겠는가, 노벨상급 학자를 모르겠는가, 부와 명예를 가진 이를 왜 모르겠는가. 그 아무 것도 가진 것 없고 27년을 살다 옥사한, 순도 높은 영혼과 마음만 지녔던 시인을, 아는 이 중 가장 성공한 이로 가슴에 새기고 있다는 것은 생각하면 깊은 감동이다.

그는 누구를 존경할 것인가 누가 진정한 위인인가를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2백년 역사가 넘는 매사추세츠의 명문 앰어스트 대학에 세계에서 온 졸업생들 중 많은 위인을 마다하고 '로버트 프러스트' 시인 동상 하나가 서 있는 장면과, 프랑스의 쉬농, 아주 작은 그 마을에 위대한 잔 다크가 태어났음에도 시내 한 복판에 시인 '프랑소와 라블레'의 동상만이 우뚝 서 있던 장면이 뇌리를 스친다.

서울 내 집 근처를 지나면 보이는 장군과 세종대왕 동상과는 대조되는 장면이다.

백세 김형석 선생의 모습과 생각과 자세는 그날 거기에 모인 어느 누구보다 젊었고 어느 누구보다 예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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