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돼지고기는 식으면 맛이 없을까
왜 돼지고기는 식으면 맛이 없을까
  • 괴산타임즈
  • 승인 2019.05.18 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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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양함 역시 기의 차이로 본다.
박석준 흙살림 동일한의원 원장.
박석준 흙살림 동일한의원 원장.

맛에서 온도는 매우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다. 커피를 예로 들어보면, 뜨거울 때는 쓴맛, 약간 식었을 때는 신맛, 다 식었을 때는 단맛이 많이 난다고 한다. 그래서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 중에는 뜨거울 때 다 마시지 않고 조금씩 식혀 가면서 마시는 사람도 있다. 

돼지고기로 수육을 만들어 먹는 경우에도 뜨거울 때는 돼지고기 특유의 고소한 맛이 나지만 식으면 식감부터 나빠지고 비린내가 나거나 별 맛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돼지고기나 돼지기름을 많이 쓰는 중국음식은 대부분 식으면 맛이 없다. 어떤 사람은 짜장면 하나도 절대 시켜먹지 않고 반드시 중국집에 가서 먹는 사람도 있다. 이런 차이는 왜 생기는 것일까? 

한의학에서는 음식 역시 하나의 기로 본다. 그런데 음식은 매우 다양하다. 그 다양함 역시 기의 차이로 본다. 그래서 각각의 음식에는 음식마다 고유한 자기의 기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음식마다의 차이를 알기 위해 기를 다시 기氣와 미味로 나눈다. 여기에서 처음 말한 기는 일반적인, 넓은 의미에서의 기이고 두 번째 말한 기는 좁은 의미에서의 기이다. 좁은 의미에서의 기는 차고 더운 것을 말한다. 그런 기에는 차가운 기와 더운 기가 있다.

더 나누면 한열온량寒熱溫凉이다. 미味는 우리가 대체로 혀로 느끼는 맛이다. 그러나 혀에서 느끼는 것만이 아니라 그것이 몸에 들어가 어떤 효과를 미치는가, 어떤 힘을 미치는가에 따라 나뉘는 맛이다. 그래서 예를 들면 인삼은 혀로 맛보았을 때는 약간 쓴 맛이 나지만 그것이 몸에 들어가면 비위[脾胃, 土]의 기를 튼튼하게 해주는 힘이 있기 때문에 인삼은 오행의 토에 해당하는 맛인 단맛이 난다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음식의 기가 ‘차다’거나 ‘덥다’라는 말은 그 음식이 갖고 있는 물리적인 온도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음식의 온도도 포함되지만 온도보다는 그 음식이 몸에 들어가 몸을 덥게 하는가 차게 하는가가 더 중요하다. 몸을 차게 만든다는 것은, 그것을 먹어서 추위를 느끼는 것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어떤 음식을 먹고 설사를 한다든지, 목이 마르지만 물을 먹으려하지 않는다든지, 뜨거운 음식을 좋아한다든지, 소변이 맑고 많이 나오는 등의 상태가 된다는 것을 말한다. 반면에 ‘덥다’는 것은 몸에서 열이 나는 것은 물론 변이 굳어 변비가 된다든지, 목이 말라 물을 많이 먹는다든지, 찬 음식을 찾는다든지, 소변이 적고 붉어진다든지 하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더운 기를 갖고 있는 마늘은 아무리 얼려 먹어도 몸을 덥게 하며 찬 기운을 갖고 있는 메밀은 끓여 먹어도 몸을 차게 만든다. 

그러나 음식 자체의 온도도 중요하다. 얼린 마늘은 여전히 몸을 덥게 하지만 얼리지 않은 마늘에 비해 몸을 덥히는 힘이 덜하다. 반면에 찬 기를 갖는 음식도 따뜻하게 먹으면 찬 기운이 줄어든다. 예를 들어 우유는 찬 음식인데, 이를 끓여서 따끈하게 먹으면 찬 기운이 줄어들어 설사와 같은 찬 기운을 줄일 수 있다. 그래서 너무 찬 것은 덥게, 너무 더운 것은 차게 하는 것, 그렇게 함으로써 몸에 미치는 치우친 작용을 줄여 음식끼리의 균형은 물론 몸과의 균형을 맞추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요리다. 

약보다는 덜하지만 음식도 모두 치우친 기와 미를 갖고 있다. 이를 조절하려는 것이 요리다. 기의 관점에서 볼 때 음식에 열을 가하거나 찬 기운을 가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목적 때문이며 이렇게 요리된 음식을 먹음으로써 몸을 온전하게 기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보통 ‘맛있다’라고 느끼는 것은 바로 이런 음양의 조화가 잘 된 음식을 먹고 느끼는 몸의 반응이다.

반면에 차거나 더운 기운을 더 강하게 하여 그 치우침을 맛있게 여기기도 한다. 예로 미지근한 냉면을 맛없게 여기는 것이 그것이다. 냉면은 찬 메밀로 만들기 때문에 요리를 할 때는 찬 기운이 지나칠 것을 염려하여 더운 겨자나 고추 등을 약간 넣는다. 그럼에도 냉면은 겨울에 속을 차게 하기 위해 먹는 것이므로 메밀의 찬 기운을 더 차게 하기 위해 차게 해서 먹다. 찬 기운이 많은 차茶를 차게 식혀서 먹는 것도 그런 예이다. 찬 기운을 더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음식은 그 치우침이 크기 때문에 오래 늘 먹을 수는 없다. 일시적인 효과가 필요한 경우 이외에는 바람직하지 않다. 또한 냉면을 겨울에 먹는 이유는, 몸 밖이 차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운 몸 안을 차게 하여 몸 밖과 안의 온도 차이를 줄여서 추위를 덜 느끼게 하려는 것이다. 또한 찬 기운으로 땀구멍을 막아 추위가 들어오기 어렵게 만들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냉면을 겨울에 차게 해서 먹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겨울과는 정반대의 상황이 되는 여름에 찬 냉면을 먹으면 몸 안과 밖의 온도 차이는 더 커지게 되고 땀을 내보내야 하는 땀구멍이 막혀 땀도 잘 나오지 않게 된다.

우리가 중국음식이 식으면 맛이 없다고 느끼는 것은, 중국요리에는 찬 기운을 갖고 있는 돼지고기나 기름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찬 기운을 중화시키는 열이 있을 때 더 맛있게 여기게 되고, 식으면 찬 기운이 너무 강해져서 맛이 없다고 여기게 되기 때문이다. 맛이 있다 없다는 기준은 진화의 결과다. 그래서 몸의 유지와 재생산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것은 맛이 없다고 여기게 된다. 이는 그 몸이 살아가는 자연조건과 역사적 조건에 따라 달라지며 몸 자체의 조건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그래서 몸이 찬 사람은 시원한 맥주를 냉장하지 않고 실온에 두었다가 먹거나 더 따뜻하게 덥혀서 먹기도 한다. 반면에 몸이 더운 사람은 거의 얼릴 정도로 해서 먹어야 맛있다고 여긴다.

음양의 기만이 아니고 오미五味라고 하는 미味 역시 그것을 맛있게 여기는 데에는 개인의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평소 신 것을 먹지 않던 사람이 임신한 다음부터 유난히 신 것을 찾는 경우가 있다. 이는 신 것을 먹어서 임신 초기에 필요한 목木(발생하는 힘)의 기운을 얻으려는 것이다. 이처럼 자신의 몸 상태, 더 구체적으로는 오장의 상태에 따라 몸에 필요한 미味를 얻으려는 것이기 때문에 입맛은 자연스럽게 변한다. 계절과 같은 자연조건, 역사와 문화라는 조건 역시 영향을 미친다.

맛있는 음식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고정된 맛은 몸의 균형을 더 파괴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남들이 맛있다고 하는 음식을 찾아다니는 것은 내 몸의 균형을 파괴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일 뿐이다. 나에게 필요한 기와 미를 찾으면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허무虛無한 입맛’이 필요하다. 허무한 입맛이란 어느 하나에 집착하지 않는 입맛을 말한다. 혀에서의 맛이 아니라 음식이 본래 갖고 있는 음식 고유의 기를 알아내고 내 몸에서 필요로 하는 기를 알아내는 입맛이다. 자연과 사회에 따라 변하는 입맛이다.

이것이 바로 허무한 입맛이며 또한 공동체에서 요구되는 입맛이다. 그러므로 그런 허무한 입맛으로 고른 음식이라면, 또한 그런 관점에서 만든 음식이라면 그걸 두고 ‘세 치 혀의 맛’을 갖고 왈가왈부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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