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를 다시 생각한다
냉장고를 다시 생각한다
  • 괴산타임즈
  • 승인 2019.04.23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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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를 통해 인류의 역사와 문화를 반성할 수 있다
박석준 흙살림 동일한의원 원장.
박석준 흙살림 동일한의원 원장.

냉장고는 더운 여름은 물론 추운 겨울에도 필요하다. 얼리지 않고도 적절한 온도에서 음식을 보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냉장의 역사는 아주 오래된 것이어서 우리나라의 경우, 삼국시대에 ‘석빙고石氷庫’라는 기록이 나온다. 이는 문자의 기록일 뿐 실제 냉장의 역사는 훨씬 앞서 인류가 제사 또는 장례를 지내면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보는 이유는, 석빙고의 ‘고庫’는 그냥 창고가 아니라 제사용품이나 무기 등을 보관하는 곳이었고 여름에 사람이 죽으면 얼음을 넣어 장사지낸다는 기록이 보이기 때문이다('삼국지' 위지동이전 부여편). 전근대 사회에서 제사는 전쟁과 더불어 국가의 가장 중요한 일이었기 때문에 일찍부터 냉장에 대한 필요가 생겼던 것이다.

지금도 남아 있는 석빙고는 조선시대까지 중요한 냉장 수단이었다. 이때의 냉장은 주로 겨울에 얼음 덩어리를 캐서 지하에 보관하는 방식이었다. 석빙고는 온도 변화가 적은 반 지하 구조로, 한쪽이 긴 봉토 고분 모양이며 바깥 공기를 줄이고 동쪽에서 비추는 햇볕을 막기 위해 출입구의 동쪽이 담으로 막혀 있고 지붕에는 환기를 위한 구멍이 뚫려 있다.

지붕은 2중 구조로 되어 있는데, 바깥쪽은 단열 효과가 높은 진흙으로, 안쪽은 열전달이 잘되는 화강암으로 만들었다. 천장은 아치형으로 5개의 기둥에 장대석이 걸쳐져 있고, 장대석이 걸친 곳에는 밖으로 통하는 환기 구멍이 3개가 나 있다.

이 구멍은 아래쪽이 넓고 위는 좁은 직사각형 기둥 모양인데, 이렇게 함으로써 바깥에서 바람이 불 때 빙실 안의 공기가 잘 빠져 나온다. 곧 복사열로 데워진 공기와 출입구에서 들어오는 바깥의 더운 공기가 지붕의 구멍으로 빠져나가기 때문에 빙실 아래의 찬 공기가 오랫동안 머물 수 있어 얼음이 적게 녹는 것이다(윤용현, '전통 속에 살아 숨 쉬는 첨단 과학 이야기').

자료출처 http://blog.daum.net/kinhj4801 토함산솔이파리
자료출처 http://blog.daum.net/kinhj4801 토함산솔이파리

그러나 이런 것은 왕족이나 고관대작과 같은 지배층에게만 적용되었던 것이고 아무래도 냉장이 대중화된 것은 1913년 미국에서 만들어진 전기냉장고가 가정에 보급되면서부터다(냉동실과 냉장실이 구분된 냉장고는 1939년, 국산화는 1965년이었다). 

냉장고가 만들어낸 변화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큰 것이었다. 첫째는 시장을 보러 가는 시간이 줄었다. 과거에는 거의 매일 장을 봐야 했던 데에 비하면 엄청난 가사노동 시간의 절약이 가능해졌다. 이로써 가사노동에서 해방된 여성의 노동력을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게 하였다.

둘째는 위생의 개선이다. 냉장고로 음식이 상하는 것을 막을 수 있어서 식중독과 같은 병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

셋째는 먹는 음식이 다양해졌다. 자기가 사는 곳에서 나지 않는 음식이나 계절과 상관없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종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 중에서 세 번째 변화가 가장 중요한 변화인데, 냉장고는 특히 농축수산업에서 저장과 유통의 문제를 해결하여 자본의 영역을 크게 넓혔기 때문이다. 이는 자본의 이윤 창출이라는 과제를 일국 내에 한정되지 않고 세계적 차원에서 실현시킴으로써 소비자-노동자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의 범위 역시 세계적 차원으로 넓혀놓았다.

이러한 변화는 세계 각국의 산업구조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과거의 식민지는 주로 자연자원과 노동력이 착취의 대상이었지만 이제 식민지는 제국주의 본국의 식량 공급원이나 무역을 위한 생산지, 그리고 제국주의 본국의 잉여 농축산물의 소비지로 재편되었다. 이에 따라 식민지의 경제구조가 파행적으로 바뀌었다.

이런 사정은 식민지 해방 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 하에서 더욱 강화되는 경향이 있다. 이 과정에서 단일경작이나 화학비료와 농약의 사용, 유전자 조작 등 생태계의 파괴 역시 구조화되었다.

이에 따라 식민지의 식량자급률이 낮아지고 농경사회의 가장 큰 특징인 자기완결구조를 갖지 못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식량자급률은 50% 정도에 머물고 있다(이하 정부 발표 자료). 사료용을 포함한 곡물자급률은 더욱 낮아 20% 대이다. 특히 밀과 옥수수 등 미국의 주요 농산물의 경우에는 0% 대에 머물고 있다. 이는 식량 안보의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우리의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음식이 다양화된다는 것은 보통 다양한 영양소를 먹게 된다는 말로 생각한다. 그리고 다양한 영양소를 골고루 먹게 되면 건강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은 물론 모든 생명은 자연, 넓게 말하자면 생태계와의 관계 속에서 진화해왔다.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를 통해 초식동물과 육식동물, 잡식동물이 나뉘고 그 중에서도 다시 복잡한 갈래가 생겼다.

사람만 놓고 보아도 유목사회와 농경사회, 추운 곳과 더운 곳, 산악이나 평야, 또는 바닷가 등 사는 곳과의 관계에 따라 체질이 달라지고 이에 따라 각 개인 또는 각 집단에 따라 각기 다른 음식을 먹게 되었다. 여기에 몸과 음식과의 관계를 최적화하기 위한 요리가 더해진다. 그러므로 사람이 먹는 음식은 인체라는 기계를 움직이기 위한 단순한 물질이 아니다.

음식은 생명의 탄생에서부터 현재를 살아가는 몸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진화 과정에서 점차로 형성된 것, 최적화된 것이며 그러므로 거기에는 그 몸이 속한 사회의 역사와 문화가 들어 있는 것이다. 나라마다, 지역마다, 집안마다, 사람마다 먹는 음식이 다르고 맛이 다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래서 사상의학을 만든 이제마李濟馬는 ‘지방地方을 맛본다’고 하였다. 특정 지역에 사는 사람이 먹는 음식으로 그 사람의 몸, 나아가 체질까지 알 수 있다는 말이다.

냉장고가 일반화되기 전에는 냉장으로 인한 문제가 그렇게 크지 않았다. 고기와 같은 음식은 오래 둘 수도 없었고 또 그렇게 두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음식은 상하기 전에 먹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자본주의 하에서 냉장고는 무한한 이윤 창출을 위한 도구가 되어 급기야는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맺어온 음식과의 관계를 단절시키는 무기가 되었다.

다양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거나 제철이 지나서도 먹을 수 있다거나 다른 지역의 음식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때로 그런 음식은 심각한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사냥을 하지 않고 슈퍼에서 파는, ‘영양학적으로’ 거의 완벽한 음식을 먹고 난 뒤에 변한 에스키모의 현재 모습을 보라).

냉장고를 통해 인류의 역사와 문화를 반성할 수 있으며 나아가 새로운 공동체의 먹을거리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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