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는 어쩌다 논란의 중심이 되었나
우유는 어쩌다 논란의 중심이 되었나
  • 괴산타임즈
  • 승인 2019.04.05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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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를 위한 건강에서 전통문화와 전통과학이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박석준 흙살림 동일한의원 원장.
박석준 흙살림 동일한의원 원장.

나이 50이 넘은 사람들에게 첫 우유는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을까? 내게 첫 우유는 60년대 시골의 한 국민학교에서 배급받은 네모난 덩어리였고 또 하나는 그 고소한 맛에도 불구하고 먹고 나서 설사를 했다는 것이다.

그 이후 나는 우유를 먹지 않았다. 아니 먹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서울로 전학을 오고 나서 받은 충격은, 적지 않은 서울 친구들이 우유를 밥 먹듯이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똑같은 음식도 먹을 수 있는 사람과 먹을 수 없는 사람이 나뉜다는 걸 처음 알았다.

우유는 한편에서는 완전식품일 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가 먹어야 하는 식품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절대 먹어서는 안 되는 위험한 식품이다. 우유의 장점에 대해서는 지나칠 정도로 알려져 있으므로 여기에서는 부정적인 주장을 알아보자.

그 전에 먼저 우유를 소화시킬 수 있는 락타아제가 결핍되어 있는 인구가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세계 인구 중 미국의 흑인을 포함한 대부분 국가 인구의 70% 이상이 락타아제가 없다. 반면에 핀란드인은 18%, 미국 백인은 8%, 스위스인은 7%, 덴마크인은 2% 정도가 결핍되어 있다.

대체적으로 보면 북구北歐 쪽 사람들이 우유를 잘 소화시키고 남쪽으로 올수록 잘 못한다. 이외의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등 대부분 지역에서는 우유를 잘 소화시키지 못한다고 보면 될 것이다. 당연하지만 이런 지역에서는 우유를 식용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서 우유는 대부분 식용이 아니라 약용으로 쓰였다.(고려시대의 의서인 '삼화자방三和子方'을 인용하여 '향약집성방'에 한 번 나온다. 여기에서 우유는 먹는 것이 아니라 외용으로 귀에 넣는다)

일부 지배층에서는 타락죽 같은 음식으로 먹기도 했고 노인의 보양식으로 먹기도 했다. 약용으로 쓸 때도 대개 오랫동안 졸여서 썼고 식용의 경우에도 오랫동안 끓여서 먹었다. 날로 먹는 경우는 일사병 같은 데에 쓸 때뿐이다.

우유를 먹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에서는 우유가 1리터 당 35그램 정도의 지방이 들어 있고 이 지방의 60% 정도가 포화지방이어서 심장질환을 유발한다고 한다. 포화지방의 하루 권장량은 10그램이다.

우유 1리터를 마시면 약 20그램 정도의 포화지방을 먹게 되기 때문에 이미 하루 권장량을 넘어설 뿐만 아니라 500 밀리리터를 마시면 다른 모든 포화지방이 들어간 음식은 먹지 말아야 한다. 또한 우유에는 칼슘만이 아니라 많은 양의 인이 들어 있어서 오히려 골다공증을 유발한다고 한다.

우유의 칼슘 대 인의 비율은 2:1이 조금 안 되는데(2:1이 넘어야 좋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인이 칼슘의 흡수를 방해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유에는 1,200밀리그램의 칼슘이 들어 있는 반면 모유에는 300밀리그램밖에 없는데도 아기 몸에는 모유의 칼슘이 더 많이 흡수된다.

많은 역학조사에서도 우유소비량이 늘 수록 골다공증이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외에도 암이나 아토피, 각종 정신질환을 유발한다는 주장도 많다.(프랭크 오스키, '오래 살고 싶으면 우유 절대로 마시지 마라', 티에리 스카르, '우유의 역습'등 참조)

이상은 ‘이상적인’ 우유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며 여기에 ‘현실의’ 우유, 곧 소가 먹게 되는 각종 호르몬제나 항생제, 살충제, 소먹이에 들어가는 각종 농약과 제초제, 소먹이의 유전자 조작, 육류 섭취, 채유와 살균, 유통과정, 소비과정에서 일어나는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우유를 먹어야 한다는 입장과 먹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에서 주장하는 바는 대부분 ‘과학적’인 근거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혀 상반되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소위 ‘과학’이라고 하는 것의 방법론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과학’, 정확하게는 근대 서양의 ‘과학’에는 ‘다른 조건이 변하지 않는다면’(ceteris paribus)이라는 전제가 있다. 예를 들어 서양의 근대경제학에는 수요공급 곡선이라는 것이 있다.

상품의 가격과 거래량의 변화에 따라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어떻게 결정되는지를 알아보는 곡선이다. 이 곡선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가격과 거래량 이외의 모든 조건은 동일하다, 변하지 않는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이 곡선은 성립되지 않는다. 아니 출발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 곡선은 현실에서 그대로 나타나는 경우가 없다. 왜냐하면 수요와 공급은 단순히 가격과 거래량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자연이라는 조건은 물론 역사적인 조건 등 다양한 변수가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이 곡선이 중요한 것은 시장의 균형점을 ‘법칙적으로’ 알 수 있게 한다는 점 때문이다.

‘과학’은 연관의 배제로부터 시작한다. 분석의 대상이 되는 어떤 사물은 다른 사물과의 연관을 배제한 것이어야 한다. 또한 한 사물에 있어서도 현실의 사물은 질과 양이 분리될 수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과학’은 질을 배제한다. 질을 대상으로 할 경우에도 그것은 이를테면 양적인 구조로 환원된 질일 뿐이다.

이런 관점을 환원주의라고 한다. 이렇게 환원된 부분에 의해 전체가 결정된다고 주장하게 되면 이는 결정론이 된다. 환원론과 결정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시 부분을 합해나가는 과정(이를테면 상향의 과정)을 밟는다고 해도 부분의 합은 전체가 될 수 없다(최종덕, '부분의 합은 전체인가').

또한 ‘과학’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떤 연관을 배제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대부분 연구자의 연구 목적에 따라 결정된다는 점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어떤 결과를 얻고자 하는가에 따라 배제되는 연관이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연구목적은 대부분 자본의 이익을 위한 것이다. 자본의 이익에 반대되는 연구는 연구비를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런 연구를 지속하는 과학자는 생계 자체가 불가능하거나 어려워진다. 우유를 둘러싼 ‘과학적’ 논란의 바탕에는 바로 이러한 과학의 근본문제가 들어 있다.

과학은 그 자체로 초역사적이거나 객관적인 것이 아니다. 과학 역시 다른 모든 것과의 연관 속에서 존재한다. 특히 우유와 같이 경제적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작용하는 대상인 경우, 우유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결코 현실의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이것이 바로 ‘과학’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이유이며, 더불어 우유에 대해 저마다 ‘과학’을 내세워 서로 상반되는 주장을 펴는 이유이고 애꿎은 논란의 중심이 된 이유다.

오늘날 진화론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은 ‘과학’의 방법에 역사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곧 분석 대상이 갖고 있는 역사적 연관, 나아가 문화적 연관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또한 진화론은 필연적으로 자연과 다른 개체와의 연관 역시 분석의 전제로 한다.

물론 여기에도 환원론적인 관점이나 결정론적인 관점이 섞여 있다. 그러나 진화론은 보다 더 많은 연관을 갖는 과학의 시작이다.

인류가 쌓아온 과학 중 이러한 연관을 가장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은 각 지역의 민간요법을 포함한 민속 또는 민족의학folk medicine이다.

이들 근대 이전의 과학은 여러 가지 한계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그 지역의 역사와 풍토, 거기 살아가는 사람들의 문화와 체질 등을 포함하여 발달해온 과학체계다. 그리고 적어도 몇 백 년에서 몇 천 년 동안 그 지역의 사람들과 함께 진화해오면서 검증받아온 과학이다.

더 이상 우유를 다른 것과의 연관이 배제된 ‘과학’으로 단정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된다. 우유 역시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그 지역의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진화해왔다.

그리고 이런 측면에서의 우유에 대해 가장 온전한 이해를 갖고 있는 것은 바로 전통과학이다.

공동체를 위한 건강에서 전통문화와 전통과학이 중요한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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