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애보리진 이야기
호주 애보리진 이야기
  • 괴산타임즈
  • 승인 2019.04.01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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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신의 詩로 쓰는 컬쳐에세이
이승신 시인이 동경 메구로 강 6키로에 늘어진 밤 사쿠라 배경으로  -  2016  3  28  동경
이승신 시인이 동경 메구로 강 6키로에 늘어진 밤 사쿠라 배경으로 - 2016 3 28 동경

평시 외국이나 지방을 가면 짧은 시간에 그 곳 역사와 문화를 알기위해 박물관 미술관을 찾게 되지만 이번에는 더 필요한 일이 있어 시드니 특강 후, 미술관 박물관부터 찾았다.

이 학기부터 단국대학원에서 '문화예술 인문학' 강의를 맡게 되어 '세계의 문화예술 인문학' 타이틀을 세우고 여러 문화선진국을 다루는 중 호주편을 하기 위해서다.

시드니Sydney의 현대미술관, New South Wales 미술관과 왕복 10시간 가까이나 걸리는 수도 캔버라Canberra의 국립박물관과 국립미술관을 보았다.

거의 50년 전부터 비교적 일찍 나는 서구의 미술관을 많이도 보았다. 워싱톤 뉴욕에 살 때는 미술관 전시를 더 자주 다녔었다. 특히 워싱톤은 수도여서인지 모든 미술관 박물관이 다른 도시와 달리 무료이므로 교민들에게 아이들과 함께 자주 가보라고, 그래서 우리 후예를 경제인으로만 키우지말고 탁월한 예술인으로도 키우라고 말도 글도 많이 했었다.

호주는 짧은 역사에 우리가 다 잘 아는 서구의 세잔느 고흐 고갱 모네 샤갈 피카소 같은 초유명 화가의 작품이 많이 걸리지는 않았으나 영연방국가로 18, 19세기 영국화가들의 작품이 풍성하고 그들과 함께 호주 자국 화가들의 작품이 잘 정돈되어 있었다. 꽉 막힌 벽에 그림만 있는 것이 아니라 더러 벽을 커다란 통유리로 하여 바깥 나무 풍경과 하늘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도 한다.

이번에 감동을 내게 준 것은 여직은 몰랐던 호주 원주민 '애보리진' 이었다. 기존의 우리가 아는 작품들과는 판이하기에 호텔 방에 두개가 걸려있어 이 곳  원주민 그림이겠거니 생각은 했었다. 그러나 그들 이름이 '애보리진'인 건 처음 알았다.

시드니의 NSW 미술관은 건물도 훌륭하고 좋은 작품이 많은데 원주민들 작품도 너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특별한 기교가 보이진 않으나 오히려 단순하고 순진무구한 마음이 보이는 그림으로 붓으로 점을 일일이 찍은 것이어서 Dot Painting이라고 한다. 나무를 깎아 만든 조각품도 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의 마음을 조금 들여다 본 것은 수도 캔버라에서 들린, 겉 풍채가 대단히 다채로운 국립박물관 저 끝에, 큰 영상으로 3분 간 돌아가는 짧은 화면에서였다. 원주민이라 하면 오래 살았던 미국의 인디언 생각이 난다. 그것도 생각하면 제대로 만난 적은 없었고 주로 영화나 영상 책을 통해서였다.

애보리진의 얼굴을 처음 보곤 진짜 놀랐다. 울퉁불퉁하고 너무 낯설었다. 아메리칸 인디언이 동양서 왔다는 설이 있기도 하지만 그토록 이질감이 들진 않았었다.

'조상대대로 우리가 살아 온 이 땅에 당신이 오신 걸 환영합니다 ~'

순박한 그 한마디에 말하지 않은 많은 것이 들어 있다.

박물관을 둘러보니 18세기 후반 영국 죄수 1500여 명을 이리 보냈고 그들은 발고랑을 양발에 차고도 벽돌을 쌓아 올리는 일을 했었다. 관객에게 그 고랑을 차고 앉아보라는 벤치도 있다. 날카로운 칼들이 전시되어 있고 총도 있는가 하면 지극히 아름다운 당시에 그려진 호주 풍경화도 걸려 있다.

자원 많고 사철 기후 좋은 이 곳에 영국인들이 몰려 와 총과 대포로 수수만년 살아 온 원주민을 무릎꿇인 것이다. 그 순한 애보리진이 조상대대로 살아 온 평화로운 곳을 어느 날 들이닥친 코 큰 서구인에게 생명부지를 위해 두손 들고 순종한 것이리라.

남의 땅을 송두리째 뺏은 정경이 설명없이도 상상이 간다. 미국도 남미도 아프리카도 동남아시아도 그러지 않았던가. 힘없고 무기 만들지 못한 천진난만한 이들이 다 당한 거다.

어느 나라나 그 역사를 들여다 보면 기구하다. 내가 그 땅을 밟은 것을 너그러이 환영하는 것이, 2백여 년 전 영국인들이 그들 땅을 짓밟고 이제껏 주인 노릇하는 것까지 받아드린다는 뜻일까.

그러기까지 마음의 갈등이 없었을 리 없다.

마음의 동요와 움직임, 굴복에 이르기까지의 긴긴 과정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오로지 2백년 후, 그들이 선조와 함께 살아왔던 그 평화의 땅에 잠시 발을 들여놓고 그 결과만을 보고 있다. 그 과정의 그 마음을 상상하며 나는 커다란 감동을 받는다.

그들은 한 구역에 모여살고 있고 일자리를 못구하면 정부가 의식주를 대준다고 했다. 의식주가 사람 사는데에 다가 아니기에 그들이 마음을 넓히고 쳐들어 온 이들을 포용하고 수많은 살해와 약탈을 용서하기까지의 과정을 후우~ 숨을 몰아쉬며 떠올려 본다.

힘없는 민족은 그 도리 밖에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스쳐 지나간다.

남반구의 캔버라에서 저 북반구를 바라보며

이승신의 詩로 쓰는 컬쳐에세이 호주 애보리진 이야기
이승신의 詩로 쓰는 컬쳐에세이 호주 애보리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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