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이근우와 연풍현감 김홍도] 가장 많은 공을 세운 사람 중의 한 사람
상암사 터 입구로부터 약 100m전 커다란 바위에 큰 불심을 반영한 듯 대시주 송문교 이름이 크고 깊게 각자되어 있다.
이 분은 상암사에 있어서 가장 많은 공을 세운 사람 중의 한 사람으로 사료되며 진천송씨로 밝혀졌다.
송문교 부인과 송문교 아버지 송낙휴의 딸에 대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송문교의 부인은 충무공 이순신 후손인 보상의 여섯 번째 딸이고 송문교의 딸은 은언군의 부인이다.
은언군의 아버지는 사도세자이며, 어머니는 숙빈 임씨이다.
은언군은 1786년(정조10) 맏아들인 상계군 이담의 독살사건에 대한 조사과정에서 함께 연루되어 강화도에 유배되었다.
1801년(순조1) 신유사옥 때 부인 송씨(송마리아)와 상계군의 부인인 며느리 신씨(신마리아)가 청나라 신부 주문모로부터 영세를 받았다는 이유로 송씨와 함께 강화도에서 사사되었다.
이후 1849년 손자인 덕원군이 철종으로 즉위하여 곧 작위가 복구되었다.
철종은 정조의 이복동생 은언군의 손자이다.
상암사는 6.25전쟁 때 소실되어 6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터만 남아 있고, 상암사와 관련된 인연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편린(片鱗)의 흔적들은 하나의 모습으로 갖추어져 있지 못하다.
하루속히 이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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