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왕들이 온천으로 간 까닭은?
조선의 왕들이 온천으로 간 까닭은?
  • 괴산타임즈
  • 승인 2018.11.26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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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준의 한방의학] 하나는 피부병이고 다른 하나는 당뇨와 연관된 질환들이다
박석준 흙살림 동일한의원 원장.
박석준 흙살림 동일한의원 원장.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왕들이 온천을 했다는 기록이 자주 나온다. 왜 갔는지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밝히지 않았지만 온천을 한 이유를 의학적인 관점에서 찾자면 아마도 두 가지일 것이다. 하나는 피부병이고 다른 하나는 당뇨와 연관된 질환들이다.

조선의 왕들은 건강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그다지 좋은 환경에서 산 것 같지 않다. 이렇게 말하면 다소 의외로 들릴지 모르겠다. 내의원에는 당대 최고 수준의 의사들이 모여 일반적인 질환은 물론 왕이 먹고 자고 일하는 모든 것을 관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소변까지 매일 점검할 정도로 엄격한 관리를 받고 있었으므로 건강에는 큰 문제가 없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사정은 다르다. 먼저 왕의 하루 일과부터 살펴보자.

왕은 아침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난다. 눈을 뜨면 자신이 일어났음을 알리는 헛기침을 한다. 일어나 옷을 차려입고 대비전에 문안인사를 드린다.

문안인사가 끝나면 해 뜰 무렵부터 경연經筵을 한다. 경연은 신하들과 경전을 놓고 토론하는 것을 말하는데, 토론이 끝나면 국정 현안을 논의하는 정치토론의 자리가 이어진다. 원래 하루 세 번 하게 되어 있다. 경연은 왕권을 주장하는 왕과 신권을 주장하는 신하들의 논의인 만큼 말이 토론이지 사실상 이데올로기 싸움이었다고 할 수 있다.

경연이 끝나면 아침 수라를 들고 나서 국정 보고를 받고 서류를 처리한 뒤 조회朝會를 한다. 매월 5, 11, 21, 25일에는 문무의 모든 관리가 참가하는 정식 조회가 열린다. 조회는 나라의 모든 일에 대해 업무보고를 받고 지시를 내리는 자리다. 왕의 권력을 확인하는 자리이면서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매우 중요한 자리였다. 팽팽한 긴장이 오가는 자리였을 것이다.

조회가 끝나면 지방을 다스리는 관리들을 만난다. 그리고 정오에는 다시 경연이 열린다. 경연이 끝나면 외국의 사절 등을 만난다.

오후 세 시가 되면 왕은 궁궐을 지키는 군사들에게 암호를 정해준다. 암호는 매일매일 달라지는데, 왕의 신변이 항상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기 때문에 자주 바꾸었을 것이다. 이렇게 하고 나면 약간의 여유가 생겨 쉬는 시간을 갖는다.

잠시 쉬고 나서 저녁 수라를 들고 다시 대비전에 문안을 한다. 그런데 대비전에서는 간단한 문안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날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정치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대비전과 대립 관계에 있으면 더 심각한 대화가 오갔을 것이다. 부모자식 간에도 죽고 죽이는 일이 드문 일이 아니었음을 생각해보면 반드시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문안이 끝나면 온갖 서류를 결재해야 하다. 정조 같은 왕은 모든 서류를 자신이 직접 다 읽고 답을 했으므로 밤을 새는 일이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그리고 남는 것은 밤일이다. 보통 사람에게는 여러 명의 후궁을 마음대로 고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것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날씨가 고르지 못하거나 감정의 기복이 심하거나 술을 먹거나 상대가 월경 중이거나 등등의 이유로 밤일 자체를 하지 못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누가 왕자를 생산하느냐 하는 문제는 권력의 핵심 문제 중 하나였으므로 후궁을 고르는 일은 절대 왕의 마음 내키는 대로 결정할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우여곡절을 겪고 택한 후궁과 밤일을 하는 동안에도 창호지 하나 사이로 의관을 비롯하여 내시 등이 지켜서 있었다.

다음으로는 먹는 것을 살펴보기로 하자.

왕은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묽은 미음을 먹는다(자릿조반). 빈속을 가볍게 자극하여 입맛을 돋우고 비위脾胃의 기를 움직여 아침식사를 준비하기 위한 것이다. 경연을 하기 전에는 죽을 먹고 경연이 끝나면 아침 수라를 먹는다. 수라의 기본상은 12첩 반상이다. 12첩 반상은 밥과 국, 김치, 찌개, 전골, 찜을 제외한 12가지가 넘는 반찬을 기본으로 한다. 각각의 음식은 팔도에서 올라온 가장 좋은, 말 그대로 산해진미로 만든 것이다. 오늘날 한 끼에 몇 십만 원씩 하는 최고급 한정식 혹은 한식과 비슷했을 것이다. 아니 그보다 더 나았을 것이다.

밥을 먹을 때는 반드시 은수저로 먹는다. 수라상궁이 일단 맛본 것을 다시 은수저로 확인하는 것이다. 독살의 위험 때문에 밥 한 숟가락도 마음대로 먹을 수 없다.

아침을 먹고 점심때는 간단한 국수나 죽을 먹고, 저녁 수라를 먹고 나서는 밤참으로 약식이나 식혜가 준비되었다. 잔치가 있으면 술과 더불어 온갖 맛있는 음식이 나왔으며 여기에 철철이 몸에 좋은 보약이 더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왕들은 그렇게 건강하지 못했고 여러 병으로 시달리다 요절하는 경우가 많았다. 조선 왕들의 평균 수명이 46세 정도라고 하는데, 이는 일반 서민의 35세(추정)보다는 길었지만 최고의 의료 서비스에 좋은 것만 먹을 수 있었던 조건에 비춰보면 그다지 긴 것도 아니다. 사대부의 평균수명이 50세가 넘는 것(추정)에 비추어 보면 더 낮다.

이렇게 오래 살지 못했던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무엇보다도 스트레스일 것이다. 위에서 본 것처럼 왕은 한 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왕족 내부와 신하의 권력 사이에서 언제 어떻게 목숨이 날아갈지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잠도 두 발 뻗고 잘 수 없었다. 이런 모든 과정에 언제나 왕관을 쓰고 옷을 갖춰 입고 있어야 했다. 활동도 불편했을 것이다.

조선 왕들의 사인死因을 살펴보면 홧병과 심장병, 종기腫氣, 당뇨 등이 가장 많다(조선왕들의 생로병사). 홧병과 심장병은 모두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원인이다.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의외로 등창이 주요한 사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 종기의 원인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습濕과 열이다. 습열을 만드는 중요한 요인은 정신적인 스트레스와 음식, 그리고 기후 등의 환경이다. 이 환경에는 왕의 의관처럼 통풍이 잘 되지 않는 옷도 포함된다. 이 중 여기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음식이다.

왕의 음식은 거칠지 않다. 곡식이든 채소든 모두 부드럽게 가공된 것들이다. 그것을 더 맛있게 하기 위해 맛을 진하게 하고 기름지게 했다. 이런 음식을 가리켜 고량후미膏粱厚味라고 한다. 곱게 간 곡식과 기름지고 맛이 진한 음식이라는 뜻이다. 고량후미는 모두 몸 안에서 열과 담痰을 만든다. 동의보감에서는 담이 열 가지 병 중에 아홉의 원인이 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한의학에서는 늘 고량후미를 경계했다.

고량후미는 당장에는 입안에서 즐겁지만 이런 음식을 계속 먹다보면 결국 열과 담을 만들어 병들게 된다. 그리고 이런 상태를 악화시키는 것이 주색과 스트레스, 특히 스트레스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조선의 왕들은 종기가 생길 모든 조건을 충분하게 갖추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종기는 물론 각종 피부병이 끊이지 않았다. 조선의 왕들이 온천을 자주 찾은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다. 곧 종기와 피부병, 당뇨로 인한 합병증 등을 치료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이 받는 스트레스는 조선 왕에 비해 별로 적어 보이지 않는다. 오늘날 사람들이 먹는 음식도 조선 왕의 수라에 비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모두 맛 집만 찾아다닌다). 주색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조선의 왕들이 온천에 간 이유를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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